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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수 있는 권리: 배드 버니와 라틴 아티스트의 문화적 영역 재협상 배드 버니는 모순처럼 보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면서도, 자신의 음악을 영어로 녹음하라는 압박을 일관되게 거부해왔다. 그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에 섰지만, 주류 팝 시장에 영합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레게톤을 글로벌 현상으로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그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모순일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문화적 전략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배드 버니의 행보는 라틴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어떤 조건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오래된 협상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가 왜 지금 이토록 중요한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크로스오버의 신화** 라틴 아티스트가 미국 주류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방식은 오랫동안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져 있었다. 이른바 '크로스오버'라 불리는 이 공식은 단순히 음악적 혼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거래였다. 스페인어를 줄이거나 없애고, 영어 앨범을 발표하고, 미국 시장이 소화하기 쉬운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포장하는 것. 성공의 대가로 출신을 희석시키는 것이 불문율처럼 작동했다. 1990년대 후반, 리키 마틴과 마크 앤서니, 제니퍼 로페즈가 이끈 이른바 '라틴 팝 폭발(Latin Pop Explosion)'은 이 공식의 절정이었다. 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는 라틴 음악이 미국 팝 차트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것은 영어로 불린 노래였다. 마크 앤서니는 살사의 대가였지만, 그의 첫 번째 대형 성공작은 영어 팝 앨범이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라틴의 '향기'였지, 라틴의 '언어'가 아니었다. 이 시대의 논리는 명확했다. 라틴 아티스트는 이국적인 매력을 제공하되, 언어적 장벽은 제거해야 했다. 문화적 정체성은 상품화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접근성을 방해해서는 안 됐다. 달리 말하면, 라틴다움은 허용됐지만 그것은 번역되고 희석된 형태여야 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셀레나는 스페인어로 노래하며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 지대의 문화적 복잡성을 온전히 담아낸 채 미국에서 거대한 팬덤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녀의 주류 돌파는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야 완성됐고, 살아있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영어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장의 논리는 그녀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스트리밍이 바꾼 것들** 배드 버니가 등장한 2010년대 후반은 음악 산업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던 시기였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부상은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들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게이트키퍼의 역할을 약화시켰다. 라디오 방송국, 음반사의 홍보팀, 음악 전문 채널이 쥐고 있던 권력이 알고리즘과 플레이리스트 편집자들에게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지리적·언어적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음악은 이미 세계적으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원어민 화자를 보유한 언어이며,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9%에 달한다. 하지만 음악 산업은 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류 팝 시장은 여전히 영어 중심이었고, 스페인어 음악은 '라틴' 카테고리에 별도로 분류되어 메인스트림과 구분됐다. 레게톤은 이 구조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다디 양키의 "Gasolina"(2004)가 클럽 문화를 통해 언어 장벽을 넘어 퍼져나갔고, 루이스 폰시와 다디 양키의 "Despacito"(2017)는 스포티파이 역사상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곡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Despacito"가 진정한 글로벌 히트가 되는 데는 저스틴 비버의 영어 리믹스 버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전히 영어라는 언어는 글로벌 접근성의 열쇠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배드 버니는 이 맥락 속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번역을 거부하는 것의 의미** 후안 헤라르도 루이스 아르셀라는 1994년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근처의 베가 바하에서 태어났다. 배드 버니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그는 슈퍼마켓에서 봉투를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6년 "Diles"가 바이럴되면서 음악 산업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초기 음악은 트랩과 레게톤의 혼합이었으며, 처음부터 전적으로 스페인어로 만들어졌다. 배드 버니가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도 영어 음악을 만들라는 압박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는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그의 거부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나는 내 언어로 노래한다. 이것이 나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입장을 반복해서 밝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말로만 이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2022년 앨범 'Un Verano Sin Ti'는 스트리밍 역사상 가장 많이 재생된 앨범 중 하나가 됐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스페인어 앨범이기도 했다. 그 앨범에는 영어 가사가 거의 없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글로벌 음악 시장이 마침내 번역 없이도 스페인어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것인가? 아니면 배드 버니라는 특정 아티스트의 카리스마와 음악적 탁월함이 언어 장벽을 극복하게 만든 것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설명 모두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음악에서 '접근성'의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것. **장르를 넘나드는 것의 정치학** 배드 버니의 문화적 전략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그의 장르 유동성이다. 그는 레게톤을 기반으로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트랩, 볼레로, 살사, 메렝게, 록, 팝, 심지어 인디 포크의 요소들이 그의 음악 안에서 공존한다. 'Un Verano Sin Ti'는 카리브해 음악의 다양한 전통을 하나의 앨범 안에 녹여낸 야심 찬 작업이었고, 비평가들은 이를 개인적인 향수와 집단적인 문화 정체성의 기록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 장르적 유동성은 단순한 실험 정신의 발현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문화적 주장을 담고 있다. 라틴 음악을 단일한 장르나 스타일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레게톤=라틴 음악'이라는 등식을 강요하는 외부의 시선에 대한 저항이다. 미국의 주류 음악 산업은 라틴 음악을 종종 단일한 카테고리로 취급한다. 그래미 어워드의 '라틴 팝' 또는 '라틴 어반' 카테고리는 실제로는 엄청나게 다양한 지역적, 스타일적 전통을 하나로 묶는다. 쿠바의 살사와 콜롬비아의 쿰비아와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푸에르토리코의 레게톤이 모두 '라틴 음악'이라는 하나의 박스에 넣어진다. 이는 편의를 위한 분류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 음악들의 구체적인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배드 버니가 카리브해의 다양한 음악적 전통들을 자신의 작업 안에 가져올 때, 그는 이 단순화에 저항하고 있다. 그는 라틴 음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학술적인 주장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통해 하고 있다. **몸의 정치학: 젠더와 섹슈얼리티** 배드 버니의 문화적 전략에서 가장 급진적인 측면 중 하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이다. 그는 페미니스트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비판하는 작업을 해왔다. 2020년 그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여성 살해(femicide)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자신의 투어 동안 피살된 여성들의 사진을 담은 공식 영상을 선보였다. 그런데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젠더 표현이다. 그는 스커트를 입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패션 요소들을 거리낌 없이 채택한다. 이는 마초이즘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라틴 음악 씬에서, 특히 레게톤이라는 장르
배드 버니는 동화(同化) 계약을 거부하고, 푸에르토리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패션, 영화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며 라틴 아티스트들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써 내려갔다.
2026년 6월 4일
